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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age and wisdom

Nov 17,2018
Park Bo-gyoon
The author is a senior columnist of the JoongAng Ilbo.

There are grand moments in history, and they often involve heads of state. The celebration of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orld War I in France was one of those moments. The highlight was the joint event in Compiègne. At the commune, the Armistice of Nov. 11 1918 was declared, ending the war that lasted four years and four months. It was the day that determined the fates of France and Germany, as Germany surrendered.

A day before Armistice Day, French President Emmanuel Macron and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visited the memorial. The exhibited articles contain vivid memories. The small museum displays the Compiègne Wagon, a train carriage in which the Armistice was signed. The carriage was an office for Marshal Ferdinand Foch, the Supreme Allied Commander. There, Foch made Germany accept defeat.

On Nov. 10, the BBC broadcast the meeting. I visited the memorial a long time ago. The footage was interesting. Compiègne was a drama of reversals, with winners and losers, joy and despair, revenge and grudges. Nov. 1918 meant joy for France, and redemption after 47 years. In the Franco-Prussian War in 1871, France was crushed. Prussia was the core of the German federation.

The situation changed 22 years later. In May 1940, at the beginning of World War II, Nazi Germany aggressively expanded and France surrendered after six weeks. Hitler reenacted history and brought out the carriage where the armistice was signed for World War I. There, he pursued extreme revenge with the same ceremony at the same place. France signed the surrender document and Hitler sat where Foch had sat 22 years before.

In the 1950s, France restored the relics of World War I. The carriage is a replica. The Alsace-Lorraine Monument was restored, showing the German Empire’s eagle stabbed by a sword representing France. The eagle is upside down and impaled. It is a fierce expression of contempt and revenge.

At the ceremony, Macron waited for Merkel’s arrival in front of the monument. When Hitler visited 78 years earlier, the sculpture was covered with a flag with the Nazi swastika. This time, it was different. The two leaders did not seem conscious of the memorial. They strolled the forest and entered the carriage. Germany and France have faced each other in this carriage on two occassions in the past. This time, they held hands and sat side by side. Their position showed the unity of reconciliation and peace. It leaves a legacy of courage and wisdom from the two leaders. In 1962, French President Charles De Gaulle and German Chancellor Konrad Adenauer set off as partners of destiny.

Many Koreans are not familiar with World War I as Korea was under Japanese occupation at the time. Most of the battlefields were in Europe. But lessons of history transcend space: World War I began romantically, but the warfront turned into a human slaughterhouse — the battles of Verdun and the Somme were the worst tragedies imaginable. It is shocking that a total of 10 million people were killed on the winning and losing sides during World War I.

Representatives from more than 80 countries attended the Armistice Day ceremonies at the Arc de Triomphe in Paris at 11 a.m. on Nov. 11, filled with the French historic perspective and cultural sentiments. Cellist Yo-Yo Ma played Bach’s Sarabande and singer-songwriter Angélique Kidjo from Benin performed. Macron’s speech stimulated the imagination, his direct language elevating the tension. “Patriotism is the exact opposite of nationalism. Nationalism is a betrayal of patriotism.” His words were aimed at U.S. President Donald Trump who was in attendance. Trump’s America First clashes with Macron’s multilateralism. However, his words cannot maintain their destructive power. The momentum of international politics is national strength.

Macron said that the bells rang 100 years ago and it was the end of the fighting, but the armistice was not peace. A war is inspired by the ambition and will of a leader. World War II exploded because of Hitler’s madness.

The Korean War began with Kim Il-sung’s ambition for communist unification. Denuclearization talks with North Korea are a long journey of ups and downs. North Korea will constantly test Korea’s security stance. Peace is maintained by power. If one side is weak, the other side is tempted to break the deal. Peace through armament induces North Korea to give up nuclear program.

Macron’s language at the banquet at the Orsay Museum was poetic. He quoted French poet Jacques Prévert, “you recognize peace, like happiness, by the noise it makes when it leaves.”


종전선언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했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역사의 장엄한 순간이 있다. 지도자는 그 장면을 생산한다. 그 풍광은 프랑스에서 진행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펼쳐졌다. 결정적인 모습은 콩피에뉴(Compiègne)에서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공동 행사다. 그곳은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80km 떨어져 있다. 거기서 4년4개월간 전쟁(1914~1918)의 마감 선언이 있었다. 그날은 한 세기 전 1918년 11월 11일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승패가 갈린 날이다. 독일은 항복했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종전 기념 전날 그곳을 찾았다. 그곳 기념물들에 칠해진 기억의 색채는 강렬하다. 작은 박물관에 ‘휴전 객차’가 전시돼 있다. 종전식은 그 안에서 있었다. 객차는 연합군사령관 포슈(Foch·프랑스군 원수)의 이동 사무실이었다. 포슈는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지난 10일 BBC방송은 두 사람의 만남을 중계했다. 나는 오래전에 그곳에 가봤다. 화면은 흥미롭게 전개됐다. 콩피에뉴는 거친 반전(反轉)의 드라마다. 거기에 승자와 패자, 희열과 절망, 복수와 원한이 얽혀 있다. 1918년 11월의 장면은 프랑스의 환희다. 그 속에 47년 만의 설욕이 담겨 있다. 1871년 보·불(프러시아·프랑스)전쟁에서 프랑스는 완패했다. 프러시아는 독일연방의 핵심이다.

그 22년 뒤 상황은 역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1940년 5월. 나치 독일의 전격전에 프랑스는 6주 만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역사를 복제했다. 그는 휴전 객차를 끌어냈다. 그는 그곳에서 극렬한 복수의 미학을 과시했다. 같은 장소와 현장, 같은 의식(儀式)이다. 프랑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히틀러는 22년 전 포슈의 자리에 착석했다.

1950년대 프랑스는 그곳에 1차대전 기념물을 복원했다. 객차는 복제품이다. ‘알자스-로렌 기념 조각상’도 새로 단장됐다. 그 조각상은 긴 칼(프랑스)로 독일제국의 독수리를 찌른다. 독수리는 거꾸로 처박힌 채 쓰러진 형상이다. 그것은 경멸과 앙갚음의 격렬한 표출이다.

행사 때 마크롱은 메르켈의 도착을 기다렸다. 마크롱이 서 있던 곳이 그 거대한 조각상 앞이다. 78년 전에 히틀러가 방문했을 때 조각상은 덮어졌다. 나치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로 가려졌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예전의 기념물을 의식하지 않았다. 숲속 공간을 편하게 걸었다. 휴전 객차에 들어갔다. 과거 두 차례 조인식 때 양측은 마주 보았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았다. 그 자세는 화해와 평화의 결속을 과시한다. 그것은 두 나라 리더십의 용기와 지혜의 유산이다. 1962년 프랑스 대통령 드골과 독일 총리 아데나워는 숙명의 동반자로 새출발했다.

1차대전은 한국인에게 낯설다. 그 시절은 일제 강점기다. 전선의 대부분은 유럽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교훈은 공간을 뛰어넘는다. 1차대전은 낭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전선은 인간 도살장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땅의 베르됭과 솜 강의 전투는 최악의 참극이다. 1차대전 죽음의 무게(승·패전국 전체 1000만 명)는 충격적이다.

11일 오전 11시 파리 개선문의 종전 기념식에 80여 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행사는 프랑스적 역사의식과 문화적 감성이 돋보였다.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바흐의 사라방드)는 희생자들의 넋으로 다가갔다. 베냉(서아프리카)의 싱어송 라이터 앙젤리크 키조의 노래가 이어졌다. 마크롱의 연설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의 단선적 언어는 긴장감을 높였다. “애국심은 민족주의의 정반대다. 민족주의는 그것의 배신이다.” 그 말은 그 자리에 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는 마크롱의 다자주의와 충돌한다. 하지만 그 말의 파괴력은 유지하기 힘들다. 국제정치의 추진력은 국력이다.

마크롱의 회고는 선언적이다. “100년 전 종전의 종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종전은 평화가 아니었다.” 전쟁은 통치자의 야심과 의지로 작동한다. 2차대전은 히틀러의 광기를 더해 폭발했다.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으로 시작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장기 여정이다. 곡절과 파란이 이어질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안보태세를 끊임없이 시험할 것이다. 평화는 힘으로 유지된다. 한쪽이 허약하면 다른 쪽은 파기의 유혹을 받는다. ‘무장(武裝)평화론’은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한다. 마크롱의 언어(파리 오르세 미술관 만찬)는 시적 감수성을 동원한다. 그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인용했다. 고엽(枯葉)의 시인 프레베르는 전쟁 세대다. “평화(paix)는 행복(bonheur)과 같아서 사라질 때 나는 소리(bruit) 를 듣고서야 그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