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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s from a life lived on stage : Celebrated violinist Kim Young-uck on his new life as a teacher

July 2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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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MUSIC & ART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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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ed violinist Kim Young-uck began performing with acclaimed musicians in his teens. After an injury in 2001, he stopped performing and started teaching students and has been directing the Special Music & Art Festival since 2014. [SPECIAL MUSIC & ART FESTIVAL]
The number of Korean musicians performing on foreign stages has increased greatly, but it is still uncommon for a Korean musician to be the biggest draw for any performance. And it remains extremely difficult for a musician to get the opportunity to consistently perform with internationally acclaimed orchestras and conductors.

But when 71-year-old violinist Kim Young-uck was in his teens, that was his reality. One of the great Korean violin virtuosos of the 20th century, a 12-year-old Kim caught the eye of legendary Belgian pianist Rudolf Serkin (1903-1991) while he was visiting Korea. At Serkin’s recommendation, Kim entered the Curtis Institute of Music in Philadelphia. He debuted with the Philadelphia Orchestra under the baton of conductor Eugene Ormandy at the age of 16.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Kim performed with prominent musicians and conductors such as Herbert von Karajan and Serge Berstein, pianists Emanuel Ax and Christoph Eschenbach and cellist Yo-Yo Ma.

He became a member of the Beaux Arts Trio in 1998, but his musical career didn’t last for much longer after that. In 2001, Kim slipped in his house in Korea and fractured his shoulder. After the incident, Kim never performed on stage again. Instead, he has worked as a professo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ince 2003. Since 2014, he teaches students with disabilities at the Special Music & Art Festival located in Pyeongchang, Gangwon. He has been named the executive director of this year’s festival.

“When I was in my twenties, I honestly didn’t know why I wanted to become a musician,” said Kim during an interview with the JoongAng Ilbo, an affiliate of the Korea JoongAng Daily.

The following are edited excerpts from the interview.



Q. Student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refer to you as a scary teacher. What do you think about that reputation?

A
. I’m not scary. Rather, music is scary. To be honest though, I was taken aback when I saw students waiting to receive answers instead of searching for answers themselves. I think students think that I am strict because I consider those things seriously.



What did it feel like to leave Korea when you were 12?

When I first went to the Curtis Institute of Music, I was bewildered because there was a genius in every practice room. That night, I called my family in Korea and said that “I should go back.” I honestly didn’t know what my path would be like after I debuted with the Philadelphia Orchestra.



Are you saying that you continued to perform without really considering becoming a full-time musician?

Yes. I just kept performing because offers kept coming in. After graduating from a music institute, I thought about going to med school or law school. I even thought about quitting [performing] when I was 25.



Did you feel burdened by the spotlight?

It feels really lonely when you have to perform with a different orchestra every week while touring different cities. It was hard for me to travel alone as well.



Many people say that you are sensitive and extremely critical about listening to your own music. Is that true?

Recently, I was driving and listened to Mendelssohn’s Violin Concerto that I performed many years ago. I thought “How on Earth could I have committed such a crime?” Back in 1973, I was scheduled to perform that piece at Carnegie Hall. But due to a severe cold and lack of preparation, I wasn’t able to practice that much. I kept practicing until dawn in my hotel room, but there wasn’t that much improvement. Looking out from my hotel window, I even considered jumping. This is an example of how [my skills] were always lacking and incomplete.



Starting in the late ‘90s, you mainly performed in small chamber music ensembles. What made you choose to do that?

I joined the Beaux Arts Trio in 1998 and then returned to Korea in 2000 to take a year-long break. But I hurt my left shoulder in my house and broke five bones.



Weren’t you able to continue performing after going through rehabilitation?

I knew that it was the end for me the moment I fell down and heard my bones break. I thought, “my life as a performer is over.” So how could I ever play again? After that incident, I never performed on stage again. Many of my friends, including cellist Yo-Yo Ma, asked me to perform on multiple occasions, but I rejected all of them. I don’t regret my decision. After all, [turmoil] is part of my life.



Do you want to be remembered as a teacher?

Well, I want to help [students] whenever I can. It doesn’t matter whether I’m working with students at universities or disabled musicians at music festivals because teaching someone is a great virtue.



What does it feel like to teach?

I feel delighted whenever I see students, especially the disabled students, light up after they figure out a difficult piece or section. It is important to inspire these students. Currently, I am much happier in my life compared to the past when I performed on grand stages. Instead of being focused on the musical notes, I can fully appreciate the sound of the music and the pieces themselves.

BY KIM HO-JEONG [lee.jeonghyun@joongang.co.kr]



어깨뼈 부상이 준 선물 “무대 잃었지만 큰 음악 얻었다”

외국 무대에 진출한 한국 연주자는 크게 늘었지만, 이른바 ‘특A 리스트’에 들어가는 이는 지금도 드물다.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협연하고 명문 공연장에서 지속해서 초청받는 연주자의 길은 좁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71)은 10대에 이미 그렇게 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단 한 번도 무대에 선 적이 없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부상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20대까지는 왜 연주자가 되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무대를 떠났지만 지금 나는 더 좋은 음악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다음달 7~11일 열리는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에 총감독을 맡은 그는 “이게 인생”이라며 웃었다.
1959년 한국에 들른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1903~91)의 눈에 띄었던 12세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김영욱이었다. 제르킨의 추천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16세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유진 오먼디와 연주하며 데뷔했다. 카라얀·번스타인 등 20세기의 전설 같은 지휘자와 협연했고, 이후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임마누엘 액스, 첼리스트 요요마 등과 함께하며 일류 연주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1998년 보자르 트리오의 멤버로 영입돼 활동한 지 3년 만에 김영욱은 한국의 자택에서 넘어져 어깨뼈가 부러졌다. 그 후 단 한 차례도 연주하지 않았고 2003년부터 서울대 음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축제인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에서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을 2014년부터 해왔고, 올해엔 아예 총감독을 맡았다.
질의 :서울대 음대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이름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응답 :“제가 무섭나요. 음악이 무섭지. 무엇보다 음악으로 대학교에 들어왔으면 음악가의 길을 정했을 때이고, 질문으로 부글부글 끓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질문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랐죠. 대답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엄격하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질의 :12세 즈음에 한국을 떠나셨죠.
응답 :“커티스 음악원에 처음 가서 정말 놀랐어요. 학교 연습실 방 하나마다 천재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날로 한국 집에 전화해서 ‘이거 돌아가야 되겠다’고….(웃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데뷔를 하고 나서도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몰랐어요.”

질의 :연주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무대에 계속 오른 건가요.
응답 :“그저 우연히 연주 제의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죠. 음악원을 졸업하고 의대나 법대에 갈까 생각도 했고, 25세쯤엔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첼리스트 요요마와 함께 한 김영욱의 1989년 연주 영상. 김영욱은 요요마, 엠마누엘 액스와 '엑스-김-마' 트리오로 활동했다.
질의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우셨나요.
응답 :“세계 여러 도시에서 오케스트라를 매주 바꿔 가며 연주하면 외로워요. 연주 여행을 혼자 다니니 뭐든지 혼자 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질의 :그래도 당시 녹음한 음반을 들으면 특유의 예민하고 집중력 높은 소리가 인상 깊습니다.
응답 :“최근에 운전하고 가다 라디오에서 제가 옛날에 연주한 멘델스존 협주곡 음반을 들었는데, ‘어떻게 내가 이런 죄를 지었을까’ 싶더군요. 생각 없이 연주했던 것 같아요. 1973년인가, 뉴욕 카네기홀에서 협연하는 무대를 앞두고 있었는데 무대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곡인 데다 전날 독한 독감에 걸려서 준비도 잘하지 못했죠. 연주 전날 호텔 이십몇층 방에서 새벽까지 연습해도 잘 안돼 창문 밑을 바라보다가, 그냥 떨어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항상 불완전했어요.”

질의 :1980년대 후반부터 작은 규모의 실내악에 더 집중하셨죠.
응답 :“98년 보자르 트리오에 합류했다가 2000년에 1년만 쉬겠다며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듬해 집에서 그만 왼쪽 어깨를 다친 거예요. 뼈가 다섯 조각으로 부러졌어요.”

질의 :재활 후 다시 연주할 수 있지 않았나요.
응답 :“넘어지는 순간 알았어요. 이제 끝이구나. 뼈가 조각나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연주는 끝났다’ 생각했어요. 몸이 완벽했을 때도 모자란 연주를 했는데 이 상태로 어떻게 하겠어요. 이후로 단 한 번의 작은 무대에도 서지 않았어요. LA필과 연주가 예정돼 있었고, 요요마를 비롯해 많은 친구가 연주하자고 몇번이고 제안했지만 다 거절했어요. 흔들림도 후회도 없어요. 이게 인생이에요!”

질의 :누군가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나요.
응답 :“대학에서든 발달장애인 페스티벌에서든 내가 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누구의 삶이든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질의 :음악으로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응답 :“음악은 어느 레벨에서든 자신하고 연결이 되면 즐길 수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든, 특히 장애인은 스스로에 대해 느끼고 표현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러니 음악을 통해서 잠깐이라도 그 순간을 느끼게 해주면 그게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기쁜 순간이 인생에 의외로 몇 번 없잖아요.”

질의 :가르치는 기쁨은 어떤 건가요.
응답 :“안되던 아이들이, 특히 발달장애 아이들이 해보다가 뭐가 됐을 때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기뻐요. 이 아이들에게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마어마한 무대에 서면서 연주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거 같아요. 곡에 대해서, 음악에 대해서 의미가 더 크게 보이고 음표가 아니라 소리가 보여요. 연주는 안 하지만 공부는 더 많이 하게 되고 끝이 없어요.”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26개국 참가자 130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다.

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