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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er humble as she achieves a first in Himalayas: The challenge taught her a number of key life lessons she shares

Dec 0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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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er Moon Seung-young, the first Korean to finish the Great Himalaya Trail’s High Route, checks the trail during her 1,700-kilometer (1,056-mile) hike. [MOON SEU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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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er Moon Seung-young, left, also known as Seorak Lady as her friends started to call her that, poses during her hike at Mount Seorak. Right, Moon poses with her team during the hike in the Himalayas in 2014. [KIM HONG-JUN, MOON SEUNG-YOUNG]
Moon Seung-young loves getting to the mountains. If anyone were to ask her to explain why she loves hiking so much, she just says it is something beyond words. Moon is the first Korean to complete the Great Himalaya Trail’s High Route, a 1,700-kilometer (1,056-mile) course. Her book “Together, the Himalayas” - translated from the Korean - was released last month and describes the first 40 days of her journey. While the official English title is “Great Himalayas Trail,” the Korean version includes the word “together” in order to show that she did not make the trek alone.

There are some Koreans who joined her on the way, but she is the first one to walk the entire trail. She took her first step onto the trail in April 2014, and then came back to it four times, spending a total of 138 days and completing the journey in January 2018. The elevation on the trail is around 6,000 meters (19,700 feet), and the trail has snowy mountains, falling rocks and icy surfaces, not to mention crevasses. Many of the spots require a high level of ability and experience.

The route is extreme for its tough sections. The Nepalese government and the tourism organization even issued her the certificate confirming that she did complete the entire course. The local media covered her achievement.

Moon has been athletic ever since she was young. She ran and canoed in middle and high school, and after she studied geographical education, she worked as a teacher at a private academy. But she left her job thinking that the thing she believes in is the Himalayas. It all started when she was 28 and went hiking to Mount Taebaek with her friend. Hiking got into her, and whenever she had time she went to mountains. Friends from her hometown of Sokcho started to call her Lady Seorak, after the mountain that’s close to her home.

She made a deal with her then-boyfriend, now her husband, and getting to the High Route was their early honeymoon. The adventure was on, and the future bride gathered the information on the trail. The future husband proposed during the hike.

She called everyone who joined her on the route and who had helped her, including a guide, a porter and a cook. The main guide and the cook are usually on the top of the tier on support teams, and the porter is the lowest, but she treats everyone equally. She set her mind into taking everyone on as her partner after she witnessed other hikers who take porters as their personal assistant, ordering a porter to put on their crampons. She supported a 14-year-old girl during her visit to the Himalayas. She acts as her guardian, as both her parents have died, and Moon wanted the girl to continue studying at school without worrying about food.

She now is part of a rescue team on Mount Seorak in Gangwon. On Oct. 5, when she was on her first mission as a rescue team member, she went out to help out the hiker in his 50s who had been soaked in the rain. What she does is non-paid work.

“I will be getting around slowly for another 40 years,” said 40-year-old Moon during her hike in Mount Seorak with JoongAng Sunday last month. “When you go slower, you get to see more. The more I go to the Himalayas, the more I started to lose any sense of competitiveness and focus more on people.”

Below are excerpts from the talk with Moon.



Q. What does it feel like to have the title of being the first Korean to complete the trail?

A.
The title of first just followed because there aren’t so many people coming for the route because it is too tough. You can basically say that I got in first in a marathon race in which I was the only contestant.



Why do you like hiking?

I just love it. There is no reason why I love it. I feel happy when I hang out with people and I see them happy. Some look at me with negative ideas when I say I seek the road less traveled. They say I make my staff suffer to find my own ecstasy. I need them and they need me. They are my colleagues and they are partners. Guides and porters there need support to support their own families. In the remote area, there is no medicine. A tube of ointment and one painkiller are so precious. Things that are so easy to find for us is something of a great help for them.



What made it so difficult to finish the route?

Due to hallucinations, I wandered over the same spot over and over again. My body temperature fell, and I got injured due to a fall. When it felt like minus 20 degrees Celsius [minus 4 degrees Fahrenheit] in a narrow area where we couldn’t open a tent, the porters in thin clothes told me and my husband to get inside the tent. I insisted we sleep outside. It made my heart ache when they made the offer. I felt bad that I might have so much more than they do. It was the 1,700 kilometers I traveled with them, it wasn’t me alone. I was so thrilled that I was with them through the journey.



Is there a reason why you put “together” first in your book title rather than Himalayas?

Together means everyone, including the people who had traveled the route with me, those who live in remote areas, those who love mountains, those who read the book. Everyone is so precious.



How did you join the rescue team in Korea?

Since I’m healthy, I wanted to offer help to those who need it. I also do overseas trekking with the disabled.



How would you compare mountains in Korea to the Himalayas?

Mountains are not the subjects to be compared because if one was to add a description to each mountain, the real charm of each mountain wouldn’t be shown. Each person might have different emotions toward each mountain. To me, mountains in Korea are the base that made me pursue my dreams to get to the Himalayas. They are the places where my dream was planted. The Himalayas are what made my dreams bigger and helped me grow inside.

BY KIM HONG-JUN [summerlee@joongang.co.kr]



히말라야 1700㎞ 완주 뒤, 설악 아씨는 왜 느려졌나

“내 신발에 끼워.”
툭. 한국에서 온 남자는 아이젠을 포터 앞에 던졌다. 포터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아이젠을 채워줬다. 여자는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노의 격류가 일었다. 자신이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히말라야의 가이드·포터·쿡은 내가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 동행자라고.

‘설악 아씨’ 문승영(40)씨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히말라야 횡단 트레일) 하이루트 1700㎞를 우리나라 최초로 완주했다. 구간별 동행한 한국인도 있었지만 풀 루트는 문 씨가 처음. 2014년 4월 첫발을 디디며 5차례, 총 138일에 걸쳐 2018년 1월 마무리했다. 6000m 안팎 고도가 이어지며 낙석·빙하·설산 지대가 숨 돌릴 새 없이 널려 있다. 크레바스도 곳곳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암벽·빙벽·설상 등 전문 등반이 필요한 구간이 많다. 문 씨가 넘은 고개의 고도를 합치면 약 12만m다. ‘익스트림 루트'로도 불린다. 그래서 네팔 정부와 관광청은 그녀에게 완주 인증서까지 내줬다. 현지 언론에서도 ‘위대한 한국인’이라며 크게 다뤘다. 문 씨는 GHT 종주 첫 40일의 기록을 지난 15일 『함께, 히말라야』로 냈다.

Q : 책 제목에서 ‘히말라야’ 대신 ‘함께’를 앞으로 내세웠다.
A : “GHT를 함께한 스태프뿐 아니라 그곳 오지에 사는 사람, 산을 좋아하는 사람, 책을 읽어주는 모두를 뜻한다. 누구도 소중하다.”

Q : 가이드나 포터·쿡을 아울러 스태프라고 부른다.
A : “이들 간에는 서열이 있다. 하지만 굳이 내가 스태프의 서열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스태프라고 하는 게 나와 상하·주종 관계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뿐 아니라 경험 많은 트레커들은 스태프라고 지칭한다.”

메인 가이드와 쿡은 동급으로, 서열상 가장 위다. 메인 가이드 밑의 보조 가이드는 쿡 밑의 쿡보이보다 위다. 포터는 쿡보이보다 아래다.

Q : 우리나라 첫 GHT 하이루트 완주다.
A :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저 따라왔을 뿐이다. 워낙 험한 길이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혼자 뛰는 마라톤에서 1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고 보면 된다.”

Q : 그래도 방송 출연 등 유명해졌다.
A :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후원받은 장비·의류도 없는데 촬영 때 입고 나와 노출한다는 둥, 포터 힘 빌리면서 유명해지려는 거냐는 둥 악성 댓글이 종종 달린다.”

Q :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체력을 담보로 하며 가는 이유는.
A : “애착이 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면 서로 행복해지는 걸 느낀다.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오지 여행가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스태프들을 고생시키며 자신의 희열을 찾는다는 거다. 나는 그들을 필요로 하고 그들은 내가 필요하다. 그들은 나와 동급, 동행자다. 가이드와 포터에겐 살림을 꾸릴 밑천이 필요하다. 오지에는 의약품이 없다. 후시딘 하나, 타이레놀 한 알이 절실하다. 낫에 이마를 다친 아이가 있더라. 마데카솔 발라주니 며칠 뒤 신기하게도 금방 낫더라. 우리에겐 사소한 게, 그들에겐 큰 도움이다.”

히말라야의 가이드와 포터들은 트레커와 고산 등반대가 주는 도움으로 삶을 이어간다. 네팔에서 2015년 4월 25일 발생한 지진으로 9000여 명이 사망했고 50만 가구 이상이 쑥대밭이 됐다. 트레커와 고산 원정대는 이 해 전무하다시피 했다. 관광업이 무너지며 네팔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2013년 671달러, 2015년 732달러의 상승세(9.2%)에서 2016년 730달러로 떨어졌다.

# 번쩍 번개가 치자 김 모락모락 나는 예비 신랑(남편)의 용변이 눈에 들어왔다. 문 씨는 하늘 보며 웃어젖혔는데, 다시 머리 위에서 번쩍. 남편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코미디인지 납량특집인지 경계가 흐릿한 이 장면은 2014년 4월 문 씨의 GHT 종주 초반에 벌어졌다.

Q : GHT 종주에 성격도 영향을 주나.
A :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게 좋다. 웃어야 한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으면 여지없이 고소(증)에 걸린다.”

중·고등학교 때 육상과 카누를 했다. 지리교육학과를 나와 학원 강사로 뛰었다. 그녀는 “믿는 구석은 히말라야뿐”이라며 직장을 때려치웠다. 결혼 약속한 남자와 작당을 했다. GHT는 미리 가는 신혼여행지였다. 혼수비용을 탈탈 털었다. 예비 신부는 섭외·정보를, 예비 신랑은 일정·촬영을 맡았다. 2014년 3월 16일 작전 개시. 예비 신랑은 5156m 룸바 삼바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행복은 잠시, 크고 작은 위기가 이어졌다.

Q : 가슴 벅차고 가슴 졸인 1700㎞였다.
A : “환상방황(착시와 착란으로 같은 지점을 계속 도는 행위), 저체온증, 낙석 부상, 설맹 … 극한 고생의 종합세트였다. 체감 영하 20도 속 웨스트콜의 좁은 테라스(급경사 중 비교적 평평한 곳)에서 텐트를 칠 수도 없어 바위에 늘어뜨려 놨다. 얇은 옷의 가이드와 포터들이 남편과 나에게 들어가라더라. 그렇게 못하겠다며 밖에서 잤다. 그들의 마음이 왜 그렇게 가슴을 움켜쥐었는지…. 그들보다 내가 너무 많이 가졌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들과 함께 1700㎞를 간 것이지 내가 혼자 간 게 아니다. 그들과 함께했다는 게 가슴이 벅찼다.”

그녀는 고민이 많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알량한 돈으로 자신의 짐을 지게 하는 게 옳은가, 짜파티(얇게 편 밀가루 반죽을 구운 빵) 몇 장으로 끼니를 때우는 포터들 앞에서 전투식량을 꺼내는 게 맞나 싶었단다. 그녀의 선택은 나눔이었다.

# 문 씨는 지난 10월 5일 설악산 마등령으로 뛰었다. 50대 남성은 저체온증에 떨고 있었다. 이 등산객은 그날 내린 46.4mm의 비를 그대로 맞았다. 문 씨의 이 날 출동은 외설악구조대원으로는 처음. 외설악구조대를 비롯한 대한산악구조협회 구조대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Q : 구조대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A : “몸이 멀쩡한데,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 장애인들과 해외 트레킹도 함께 한다. 재능 기부다.”

Q : 14살짜리 ‘딸’이 있다. 2014년에 결혼했는데….
A : “히말라야에서 만난 소남 엥지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Q : 구조대원들 사이에서 ‘말술’로 통한다.
A : “남편이 못 마시니 내가 대신 마셔주는 거다(웃음). 히말라야에서도 고도 적응만 되면 막걸리와 비슷한 ‘창’이나 ‘럭시’를 마신다. 밖에서도 잘 잔다. 야영 중에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았는데, 동료들이 멧돼지인 줄 알고 기겁했단다.”

문 씨는 히말라야를 11번 찾아 총 3500㎞가량 트레킹을 했다. 출발점은 태백산이었다. 그녀는 "28세에 친구와 겨울 태백산에서 기고 구르며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인두처럼, 산이 가슴에 찍혔다. 닥치는 대로 산에 드나들었다. 고향 속초의 친구들이 ‘오늘도 산이냐, 이 설악 아씨야’라며 종종 농을 건넸다. ‘설악 아씨’라는 별명은 이때 생겼다. 문득, 우리나라 산에 관해 묻고 싶었다.

Q : 우리나라 산과 히말라야를 비교하자면.
A : "산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수식어가 붙으면 제각각 산의 정체성이 왜곡될 수 있다. 사람마다 산에 대한 느낌은 다를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산은 내가 히말라야에 가겠다는 꿈을 심어준 터전이자 어머니 같은 품이다. 히말라야는 꿈을 키워주고 내적 성장을 이뤄준 무대다."

Q : 100대 명산, 백두대간은 해 봤나.
A : “어느 산에 몇 번 갔는지 세어보지는 않았다. 많이 갔다. 타이틀이나 캠페인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100대 명산 캠페인은 등산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백두대간은 지리산~속리산 구간을 간 상태다."

문 씨와 지난 11일 설악산 비룡폭포까지 걸은 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녀는 “이렇게 느릿느릿 40년은 더 돌아다닐 것”이라며 “천천히 가면 더 보게 된다. 히말라야에 다녀올수록 빨리 가야겠다는 경쟁심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공룡능선이 천천히 해를 삼키고 있었다.

김홍준 기자